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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차의 맛, 와타나베 미야코: 차 한 잔에 담긴 마음과 시간

 

 

차의 맛, 와타나베 미야코: 차 한 잔에 담긴 마음과 시간

 

 

 

1. 서론: 차를 마시는 순간, 삶은 조금 더 따뜻해진다

어떤 날은 그냥 바쁘다. 아침부터 쏟아지는 일과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 하루를 겨우 버텨내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런데 그런 날, 우연히 마신 한 잔의 차가 마음을 부드럽게 풀어줄 때가 있다. 따뜻한 찻잔을 손에 감싸 쥐고, 깊고 은은한 향을 들이마시는 순간, 세상의 속도가 잠시 느려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일본 교토에서는 차를 단순한 기호식품이 아니라, 계절을 음미하는 방법이자,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체, 그리고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으로 여긴다. 차를 대하는 태도에는 '맛'을 넘어선 어떤 철학이 담겨 있다.

와타나베 미야코의 《차의 맛(お茶の味)》은 바로 그런 차의 세계를 담아낸 책이다. 저자는 교토 데라마치 도리에 위치한 300년 전통의 차 가게 ‘잇포도(一保堂)’의 6대 안주인으로, 오랜 시간 차를 접하며 배운 것들을 이 책에 담담한 문체로 풀어낸다.

책은 차를 마시는 순간의 감각과 감정, 다도를 배우면서 경험한 일화들, 그리고 차가 일상 속에서 어떻게 위로가 되는지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나도 차 한 잔을 마시며 사색하는 사람이 되어 있다.

 

2. 저자 및 책 소개: 300년 전통의 차 가게 잇포도와 와타나베 미야코

2-1. 잇포도(一保堂): 교토에서 가장 오래된 차 가게

잇포도는 1717년 교토 데라마치 도리에 문을 연 유서 깊은 차 전문점이다. 교토에서는 다도가 단순한 문화가 아니라, 사시사철 계절의 흐름을 느끼고, 사람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하나의 삶의 방식이다. 잇포도는 그런 철학을 300년 넘게 지켜오며 센차(煎茶), 말차(抹茶), 교쿠로(玉露), 호지차(焙じ茶) 등 일본 전통 차를 전파해 왔다.

이곳의 6대 안주인인 와타나베 미야코는 차가 사람들의 삶에 어떻게 녹아들 수 있는지를 고민하며, 차 문화와 그 가치를 널리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다.차의 맛》 역시 그 연장선에서 탄생한 책이다.

2-2. 《차의 맛》: 차를 통해 배우는 삶의 태도

《차의 맛》은 차를 통해 삶을 천천히 음미하는 법을 배우는 에세이다.

책에는 저자가 교토에서 차 가게를 운영하며 만난 사람들, 차를 마시며 떠오른 단상, 그리고 계절의 변화에 맞춰 즐기는 차와 다과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책 속에서는 차를 통해 느끼는 계절의 조화와 차를 내는 마음가짐, 다도의 철학, 교토를 바라보는 시선 등이 담겨 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차를 마시는 행위는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자신을 돌보는 행위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3. 차와 함께하는 삶의 미학

3-1. 차 한 잔이 주는 위로: ‘맛있어져라!’ 하고 바라기

책에서 저자는 차를 잘 우리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렇게 말한다.

차를 맛있게 우리는 요령은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맛있어져라!’ 하고 바라는 마음이에요. p.71

 

급한 마음에 초조해하거나 짜증이 난 상태에서는 차가 잘 우러나지 않는다. 결국, 차를 우리는 과정도 우리의 마음가짐에 영향을 받는다.

이 말은 차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도 적용할 수 있다. 무언가를 급하게 해치우려 하기보다, 진심을 담아 대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좋은 결과’를 만드는 비결 아닐까?

3-2. 차를 배우는 과정에서 느낀 ‘텅 빈 상태’

와타나베 미야코는 다도 시간에 느낀 특별한 순간을 이렇게 표현한다.

예식을 배우고는 금방 잊어버리는 일들의 연속이지만,
선생님의 자택을 방문하는 것만으로도 평소의 시간 흐름과는 동떨어진 순간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온 마음을 집중하기 때문에 저 자신이 뭔가 ‘텅 빈’ 상태가 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p.200

 

‘텅 빈 상태’라는 말이 인상적이다. 보통 우리는 ‘무언가를 채우는 것’에 익숙하다. 더 많은 지식, 더 많은 경험, 더 많은 소유. 하지만 다도를 배우면서 저자는 반대로 비우는 것이 주는 특별한 감각을 깨닫는다.

고요한 순간에 울리는 물 끓는 소리, 국자를 놓을 때 나는 소리, 차선을 휘젓는 소리. 그 모든 것이 ‘텅 빈 상태’에서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들에 집중하느라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3-3. 차를 마시며 계절을 느끼다

센차를 마시고 나면 뒷맛이 산뜻해지는 건 사실이지만,
그 감각이란 가르쳐준다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몇 번이고 마셔보면서 자연스럽게 알아가는 것이 아닐까요? p.147

 

책에서는 차의 맛을 느끼는 과정도 ‘배움’이라고 말한다. 한 번 마셔서는 모른다. 몇 번이고 마셔보면서 차의 깊이를 이해하게 된다.

이처럼 차는 계절과 함께 천천히 익숙해지는 것이다. 봄에는 신차, 여름에는 냉침한 센차, 가을에는 볶은 호지차, 겨울에는 깊은 풍미의 교쿠로.

차를 통해 우리는 계절의 흐름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4. 결론: 《차의 맛》을 추천하며

《차의 맛》은 차 문화에 대한 책이지만, 결국은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책이다.

바쁜 일상 속에서 여유를 찾고 싶은 사람, 일본의 다도와 차 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 천천히 음미하며 배우는 삶의 방식을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책을 덮고 나면, 한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오늘 나는 어떤 마음으로 차를 우렸는가?

나와 당신의 오늘 하루도 ‘맛있어져라!’ 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