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 나는 왜 이 책을 읽으며 자꾸 불편해졌을까
나는 그동안 '지속가능성'이라는 단어를 비교적 안심되는 말로 사용해왔다. 친환경 제품을 고르고, 덜 소비하려 애쓰고, 재활용을 잘하면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믿었다. 나의 일상은 그렇게 정돈된 도덕 위에 놓여 있었다. 그런데 《재앙의 지리학》을 읽는 동안, 그 생각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 책은 환경을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누가 책임을 지고 누가 그 책임에서 빠져나가고 있는지를 집요하게 묻는다. 지속가능한 미래라는 말이 왜 이렇게 자주 사용되는지, 그리고 왜 그 말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공허하게 들리는지를 이 책은 끈질기게 파고든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지속가능성이라는 말이 과연 모두에게 같은 의미인지 묻게 되었다.

지속가능한 미래라는 말은 누구의 미래인가
책의 프롤로그에서 처음 등장하는 개념은 '탄소 식민주의'다. 부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 비용을 그 부를 소비하지도 않는 다른 지역이 대신 떠안는 구조. 나는 이 표현을 읽으며 그동안 너무 쉽게 사용해온 '글로벌'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우리는 국경을 넘는 소비에 익숙해졌고, 거리의 의미가 사라진 것처럼 행동해왔다. 하지만 저자는 말한다. 공간적 거리의 법칙이 끝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법칙이 끝났다고 믿도록 학습되었을 뿐이라고.많은 부유한 국가에서 환경 지표는 개선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오염이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라, 오염이 다른 곳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글로벌 경제는 가장 더럽고 파괴적인 공정을 더 오래 견뎌야 하는 지역으로 밀어낸다. 이 구조 속에서 지속가능성은 하나의 이미지가 된다. 깨끗한 도시, 친환경을 표방하는 상품, 그리고 도덕적 소비자라는 자의식. 하지만 그 이미지의 이면에는 여전히 같은 방식의 추출과 파괴가 반복되고 있다.
개인의 윤리는 왜 항상 무력해지는가
나는 소비자의 선택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이 책은 그 생각을 정면으로 부정한다. "소비자의 힘이 글로벌 경제를 더욱 윤리적이거나 지속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문장을 읽었을 때, 나는 잠시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 문장은 차갑지만 정확했기 때문이다.오늘날 거의 모든 제품은 어떤 방식으로든 친환경을 표방한다. 그러나 그 주장은 검증되지 않거나, 기껏해야 그린워싱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문제는 소비자가 충분히 착해지지 못해서가 아니다. 문제는 글로벌 공급망 자체가 지나치게 복잡하고 불투명해 책임을 묻기 어렵게 설계되어 있다는 점이다. 개별 국가 단위의 탄소 회계는 오히려 배출을 국경 밖으로 이동시키는 게 유리하게 작동된다. 우리는 글로벌한 환경에서 살고 있지만, 생각은 여전히 국경 안에 머물러 있다.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표현 중 하나는 '지속가능한 소비라는 아편'이다. 이 말은 소비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 오히려 우리의 시선을 구조적 변화에서 멀어지게 만든다는 뜻이다. 윤리적 구매에 쏟는 에너지가 정치와 제도, 규제로 향하지 않는 한 우리의 노력은 쉽게 헛수고가 된다.
기후위기는 자연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다
2부에서 저자는 기후변화를 '불평등이 증폭되는 방식'으로 설명한다. 기후변화는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닥치는 재난이 아니다. 한 개인이 기후변화를 어떻게 경험하는지는 사회적 지위, 자산, 협상력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더 가난할수록 기후변화에 더 취약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기후변화가 단독 원인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토지를 잃고, 생계를 잃고, 노동 조건이 악화되는 과정에는 항상 기후변화 외에도 부채, 개발, 정치적 결정이 얽혀 있다. 기후변화는 모든 것을 설명하지 않지만, 이미 취약한 조건을 촉매처럼 가속화한다. 그래서 저자는 말한다. 환경 정의는 곧 경제 정의라고. 더 평등한 세계가 기후붕괴에 맞서 싸우는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누가 기후를 말할 수 있는가
이 책은 기후를 둘러싼 '지식'의 문제도 짚어낸다. 글로벌 북반구의 소수 학자와 기관이 세계의 환경을 정의하고, 글로벌 남반구에서 생산된 지식은 제대로 인용되지 않는다. 기후 지식 역시 권력이라는 말은 그래서 무겁다. 어떤 데이터가 사용되고, 어떤 목소리가 배제되는지는 결국 자원과 정책, 돈의 흐름을 결정한다.숲이 '활용도가 낮다'는 이유로 사라지는 현실을 떠올리면, 우리는 자원을 얼마나 편향적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매일 마주하는 환경은 소중히 여기면서, 보이지 않는 곳의 자연은 쉽게 희생시킨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런 수탈이 가능했을까.
여섯 가지 신화, 그리고 지속가능성에 대한 재질문
< 탄소 식민주의를 부추기는 여섯 가지 신화 >
첫 번째 신화: 기후변화가 더 많은 자연재해를 유발한다?
재해는 이런 위험요소가 취약성 및 경제적 불평등을 만났을 때 발생한다.
두 번째 신화: 소비를 통해 기후붕괴에서 벗어날 수 있다?
세 번째 신화: 환경주의자들은 넷제로를 위해 싸운다?
네 번째 신화: 국경 안보를 강화해 수십억 명의 기후 이주민을 가로막아야 한다?
기후변화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규정하는 요인은 환경 자체가 아니라 기후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의 유무인 경우가 더 많다. p.287
다섯 번째 신화: 지속가능성은 국내에서부터 시작된다?
여섯 번째 신화: 기후과학은 정치와 무관한 합의다?
에필로그에서 제시되는 여섯 가지 신화 중 나에게 가장 크게 다가온 것은 '소비를 통해 기후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믿음과 '지속가능성은 국내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생각이었다. 이 책은 그 두 가지를 모두 부순다. 우리가 집계해야 할 것은 국경 안에서 배출한 탄소가 아니라 우리가 사용한 전체 탄소라는 주장 앞에서 지속 가능성은 더 이상 깔끔한 국가 브랜드나 개인의 미덕으로 남을 수 없다.
기후는 사회라는 옷을 입고 인간을 만난다. p.297
이 문장은 이 책의 결론을 가장 잘 요약한다. 기후는 혼자서 행동하지 않는다. 언제나 경제나 정치, 권력과 함께 움직인다.
결론 | 지속가능성이라는 말을 다시 쓰기 위해
《재앙의 지리학》은 행동 지침을 친절하게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더 이상 변명할 수 없게 만든다. 이 책을 덮으며 나는 덜 사는 소비자가 되는 것보다 더 많이 묻는 시민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의존하는 경제가 어디에서 무엇을 파괴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책임에서 나는 얼마나 자유로운지 말이다.지속가능성이라는 말은 이제 나에게 편안한 단어가 아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단어는 다시 사유될 가치가 있다. 더 이상 숨기지 말라고 요구하고, 더 이상 미루지 말라고 말하는 것. 아마도 이 책이 말하는 지속가능성은 바로 그런 태도에서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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