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여행이 불편해진 시대에 여행을 말한다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처음 보는 도시와 풍경 앞에 서 있을 때 느끼는 일상에서 벗어났다는 감각이 좋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여행을 떠난다는 말이 예전처럼 가볍게 느껴지지 않기 시작했다. 기록적인 폭우와 가뭄, 산불과 침수 소식이 일상이 된 지금,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나의 이동은 과연 아무 문제 없는 선택일까라는 질문이 마음에 남았기 때문이다.
「기후여행자」는 바로 이 불편한 질문에서 시작하는 책이다. 여행을 멈추라고 말하지 않지만, 더 이상 이전과 같은 방식의 여행은 지속될 수 없다는 사실을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이야기한다.

여행할 수 없는 시대의 여행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여행이 더 이상 개인의 취향이나 취미로만 남을 수 없다는 현실이었다. 여행은 항공 산업, 관광 정책, 도시 개발, 그리고 기후위기와 긴밀하게 연결된 구조적인 문제다. 이 책은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반복해 온 여행이 어떤 전제를 바탕으로 가능했는지를 되묻는다.
“지금처럼 지구가 서너 개쯤 있다는 듯 여행을 한다면 곧 여행이 아니라 지구가 멈추게 될 것이다.” p.40
이 문장은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일수록 쉽게 지나칠 수 없는 문장이다. 우리의 이동과 소비는 지구가 무한하다는 착각 위에서만 가능했다는 사실을 정면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여행의 자유가 당연하게 느껴졌던 이유는, 그 비용과 피해를 누군가 대신 감당하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멈출 수 없다면, 바꿔야 한다
「기후여행자」가 반복해서 강조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여행은 멈출 수 없다면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그 변화는 개인의 윤리적 선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책은 바르셀로나 사례를 통해 오버투어리즘의 본질이 무엇인지 짚어낸다. 문제가 되는 것은 너무 많은 여행자가 아니라, 너무 많은 여행을 허용하는 정책이라는 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 관광개발과 투자자의 이익이 아니라 시민 전체를 위한 공공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도시의 지속가능성에 우선순위를 두어 어떤 로비나 특정 집단에 의해 좌우되지 않도록 하는 거죠. 마지막으로 관광을 통해 발생하는 수익은 지역사회에 환원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 어떻게 그런 급진적 결정이 지방정부 차원에서 가능했는지 묻자 안나는 도리어 반문했다. ‘도시정부가 관광회사가 아니라면 당연한 결정 아닐까요?’” p.84
이 대목을 읽으며 관광이 도시를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 도시가 관광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관광 수익보다 시민의 삶과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우선하는 결정이 ‘급진적’으로 여겨지는 현실이 오히려 낯설고 씁쓸하게 느껴졌다.
속도를 늦출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
책은 여행의 구조적 전환과 함께, 여행자의 태도 변화도 함께 이야기한다. 더 많이 보고, 더 빨리 이동하는 여행이 아니라 덜 자주 떠나고, 더 오래 머물며, 더 깊이 만나는 여행으로의 전환이다.
그 과정에서 이 문장은 유독 오래 마음에 남았다.
“쓸데없다고 느껴지는 시간을 견디는 힘, 그것 외에 서로를 마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으니까요.” p.85
효율과 결과에 익숙해진 여행에서 ‘쓸데없는 시간’은 늘 줄여야 할 대상이었다. 하지만 머무는 여행자가 되기 위해서는 바로 그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말이 인상 깊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 계획에서 벗어난 시간 속에서야 비로소 장소와 사람을 소비의 대상이 아니라 존재로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덜 자주, 더 깊이, 더 오래
《기후여행자》는 여행을 통해 더 많은 것을 소유하기보다, 더 적게 해치고 더 깊이 연결되기를 제안한다. 머무는 여행자는 관광객이 아니라 이웃이 되고, 이웃이 되면 함부로 소비할 수 없으며 쉽게 떠날 수도 없다.
이 책이 말하는 기후여행은 결국 여행의 문제를 넘어 삶의 방식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내가 누리는 편리함은 어디에서 오는지, 그 비용은 누가 감당하고 있는지, 그리고 나는 어떤 여행자가 되고 싶은지에 대해서 말이다.

책을 덮으며
「기후여행자」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결코 편안한 책은 아니다. 그러나 바로 그 불편함이 이 책의 가장 큰 가치다. 이 책은 여행을 포기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선택하라고 말한다.
지금처럼 계속 갈 것인지, 아니면 다른 방식의 여행자가 될 것인지.
책을 덮고 나서 나는 여행 계획을 세우는 기준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다. 더 멀리 가는 여행보다 더 오래 머무를 수 있는 여행을 먼저 떠올리게 되었고, 사진보다 관계를 남길 수 있는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기후위기 시대에 여행을 계속하고 싶다면, 「기후여행자」는 반드시 한 번쯤 함께 읽어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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